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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dn 2009 - 하이든 기념      (c) Wien Tourismus  -  뷔인의 쇤브른 궁성과 젋은 바이올린 연주자 Lidia Baich

하이든 (Joseph Haydn, 1732-1809) 100곡 이상의 교향곡을 작곡해서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이 외에 많은 실내악, 교회음악, 오페라 그리고 유명한 [천지창조 Schöpfung](1798), [계절 Die Jahreszeiten] (1801) 등 오라토리오 풍의 명작을 작곡하였다. 2009년은 [하이든의 해]로 서거 200주년을 기념해서 그의 출생지인 로라우(Rohrau)와 그가 활동한 아이센슈타트 (Esisenstadt) 및 뷔인(Wien) 그리고 이 외의 여러 곳에서 그에 관한 많은 음악 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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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절

요셉 하이든은 1732331일 지금의 니터외스터라이히 주와 브르겐란트 주의 경계 가까이에 있는 로라우 (Rohrau)에서 수레를 만드는 아버지와 요리사 (로라우성의 바라흐 백작에 고용된)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하이든의 집안은 결코 풍부하지는 않았으나, 적은 수입으로 요셉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을 양육하였다. 요셉 하이든은 6살부터 하인부르크 (Hainburg, 로라우에서 약 10km)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www.niederoesterreich.at

그 후에 비엔나의 성 슈테판 대성당의 소년합창단의 일원이 되었으며 변성기까지 독창 자로 활약하였다

그 후 무명의 음악가로서 일하기 시작한 하이든의 생활은 아주 빈곤하였다. 비엔나의 콜 마르크트에 있는 미뷰에라 하우스의 난방이 없는 지붕의 방에서 살며 작곡의 일을 했다. 작곡의 일은 주로 성악 교사 니콜라 포르포라 (N. Porpora)로부터 받았으며, 그의 대가로 포르포라로부터 작곡, 성악, 이탈리아어의 레슨을 받았다. 하이든을 귀족사회에 소개한 것도 포르포라이었다. 이것을 기회로 하이든은 위촉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757년에서 1758년까지 니더외스터라히주의 봐인취어를성 (Schloss Weinzierl)의 퓌른베르크 백작 (Grafen Fuernberg) 를 위한 현악 4중주를 쓰면서 동시에 체코의 필센(Pilsen) 가까이에 있는 루카벡(Lukavec)의 모르친(Morzin)백작 가의 악장에 임명되었다. 이 시기 하이든은 마리아 안나 켈러 (Maria Anna Keller)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녀는 하이든의 음악에 대해서 이해가 적어서, 하이든의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아이도 없었다. 하이든과 관계가 있었던 가수 루이지아 폴체리 (Luigia Polzelli)의 아이들이 하이든의 아이가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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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터하지 (Esterhazy) 가와 만남

하이든의 생활은 에스터하지 가와 만남에 의해서 대단히 변했다. 1761년 하이든은 파울 안톤 에스터하지 (Paul Anton Esterhazy) 후작의 악단의 부 악장에 취임해서 에스터하지 궁성이 있는 부르겐란트 (Burgenland)주의 아이센슈타트로 옮겼다. 베르크교회 (Bergkirche)의 옆에 있는 음악가의 집에 살게 되며, 그는 대부분의 생애를 에스터하지 가를 위해 일하게 된다. 1762년에 서거한 파울 안톤 후작의 후계자 니콜라우스(Nikolaus) 1세는 하이든의 경제적 지원자가 되었으며 하이든에 있어서 여러 면으로 옹호자가 되었다. 1766년에 악장인 그레고르 요셉 웨르너(Gregor J. Werner)가 죽음으로 하이든이 그 지위를 인계하게 되었다. 이 승진에 의해서 급료도 늘어나서, 그 해 하이든은 아이센슈타트에 집을 샀다. 이 집은 오늘도 아이센슈타트의 하이든갓세 (Haydngasse) 21에 있으며 [하이든 박물관(Haydnmuseum)]로 되어 있다. 니콜라우스(Nikolaus) 1세는 하이든에 많은 곡을 의뢰해서 하이든은 여기에 응해서 많은 훌륭한 곡을 작곡하였다. 이렇게 하여 작곡가 하이든은 새로 재능이 개화 되여 그의 이름은 세계적으로 알리어 지면서 파리, 마드리드, 뉴욕과 그 외의 대도시에서 그의 곡이 연주 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1790년 하이든의 지원자였던 니콜라우스 1세가 죽은 후에 후계자인 안톤 후작으로부터는 명예악장이라는 칭호를 받고 그 직을 물러나 비엔나에서 살았다. 즉 일찍 연금생활을 하였다. www.burgenland.info / www.haydnfestival.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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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 Burgenland Tourismus   -  Esterhazy 궁성 건물 내에 있는 [하이든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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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England) 여행

독일의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런던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성공한 J.D. 잘로몬의 권유로 영국을 건너가게 된다. 연금생활에 들어간 하이든은 영국여행을 계획해서 179111일 도바 해협을 건냈다. 그의 콘서트는 영국에도 열광적으로 환영되어 박수갈채를 받아 신문에도 격찬되었다. 더욱 하이든은 영국의 왕후귀족과 접촉이 되었으며, 옥스포드대학에서 명예박사의 칭호를 받는 등 대성공릉 거두었다. 친구인 모찰르트가 그의 어학 능력으로 영국의 여행은 무리할 것이라고 하이든에 이야기할 때 하이든은 [자기의 어학은 음악]이다라고 한 그의 말대로 그의 음악은 전 세계사람들이 이해할 것이니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그의 말대로 영국에도 하이든의 재능은 인정되었다. 하이든은 후에 다시 1794년에서 1795년에 거처서 영국에 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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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Vienna)의 생활

1792년 영국에서 귀국한 하이든은 비엔나에 집을 구입했다. 이 주거는 지금에도 비엔나 6구의 [Haydngasse 19]에 있다. 하이든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비엔나에서 지냈다. 하이든의 연금생활로 좇은 에스터하지 후작이 사망하고 그의 후계자인 니콜라우스2세가 다시 악장으로 하이든을 고용했으나, 하이든은 비엔나에 머무른체 작곡활동을 계속하였다.

19세기에 들어가면서 그의 몸은 쇄약해져서 병에 들면서 1809, 나폴레옹군이 비엔나를 침입한 직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최후의 해, 비엔나 시에서 명예시민의 칭호를 받았다. www.wien.info

    (c) Wien Tourismus  - 뷔인에서 활동한 [하이든 집] (Haydngasse 19번지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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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Mahler (1860-1911)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europe/195  

2011 Liszt, F.  (1811-1886)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austria/219

2011 Mahler, G. (1860-1911)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218

2012 Mendelssohn, F. (1809-1847)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139     

2013 Wagner, R. (1813-1883)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296

2014 Bach, C.P.E. (1714-1788)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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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지열 (Song Ziyul) / www.eurasiatour.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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