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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樂聖) 베토붼 (Ludwig van Beethoven)

       ©BonnTourist Info - 주요박물관인 [베토벤하우스]장면

 

베토붼은 1770년12월16일 (12월17일에 유아세례을 받음), 신성로마제국 쾰른 대사교령 (현 독일령)의 본 (Bonn)에서 아버지 요한 (Johann (1740–1792)과 궁정 요리사의 딸인 마리아 막달라 (Maria Magdalena Keverich in 1767 결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베토붼은 아버지로 그의 재능을 인정받아 과중한 교육을 받았으며 1778년(7살)에 쾰른의 연주회에 출연했고, 11살 때 오페라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네-페 (Ch. G. Neefe) 에 사사(師事)되었다.  

Bethovenfest Bonn 2019: 9월6일 – 29일 /  www.beethovenfest.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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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7년에 뷔인 (Wien)을 여행하여 동경한 모짜르트를 만났으나, 곧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위독한 소식을 듣고 본으로 돌아왔다.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폐결획으로) 사망했다. 그 후 알코올 의존증으로 실업이 된 아버지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보느라,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이때에 후원자가 있었다. 가정교사로  

1792년7월, 런던에서 뷔인로 돌아가는 도중에, 본을 들린 하이든 (Joseph Haydn) 에 그의 재능을 인정 받아 제자로 들어가는 허락을 받고, 이 해 11월에 뷔인으로 이주했다. 드디어 피아노의 즉흥연주로 명수(名手, virtuose)]로 널리 명성을 떨쳤다.

20대 후반 경부터 난청이 서서히 악화, 28세경에는 최고도의 난청자(難聽者)가 된다. 음악가로서 청각(聽覺)을 잃은 다는 것은 죽음과 같은 절망감에서 1802년에는 [하이린겐슈타트의 유서(遺書) (Heiligenstädter Testament)에서 자살을 생각했으나, 그 자신의 예술 [음악]에 강한 열정을 갖고 이 고민을 극복하고 다시 살 의욕을 얻어 새로운 예술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되었다.

작곡가로서 시작은 귀의 문제로 고민했음에도, 고전파 양식에 충실히 밝은 활기에 찬 작품을 만들었다. 즉 그의 작풍(作風)은 하이든(J. Haydn, 1732-1809)과 모짜르트 (W. A. Mozart, 1756–1791)의 강한 영향하에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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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WienTourismus / Ingo Folie - 쇹부른 궁성과 젊은 바이올린 주자 L. Baich www.haydn2009.net

1804년에 교향곡제3번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후 10년간을 거처 중기를 대표하는 작품이 쓰여져서, 베토붼에 있어서 [걸작의 숲] (로만 로란, Romain Rolland에의한 표현)라 불리는 기기가 된다. 그 후 피아니스트겸 작곡가에서 완전히 작곡전업으로 옮긴다.

1802년 첫 번째의 위기와 유서를 쓴 정신적 위기이다. 베토붼은 그의 위기를 [뷔인 고전파] (Wiener Klassik)의 형식을 재발견하는 것에서 탈출하다.  

중기의 교향곡(Symphony)은 [minuetto]는 아니고 [scherzo, 스케르조]의 도입, 종래의 [소나타형식] (Sonata form)을 飛躍적으로 확대 (제3번, Third Symphony, Sinfonica Eroica), 선율의 기본이 되는 動機와 리듬의 徹底操作 (제5, 7번), 標題적 요소 (제6번), 樂章의 연결 (제5, 6번), 5 악장형식 (6번) 등 革新적인 技法을 考案해 내었다.  

작품은 고전파의 양식미(美)와 낭만주의(Musik der Romantik)를 아주 높은 차원에 양립하고 있으며, 음악의 이상적 존재로,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40세무렵 (만년의 약 15년)에는 완전히 청각장애자가 되며, 더욱이 신경성으로의 복통(腹痛)과 설사에도 고통스러웠다. 더해서 가끔 非行으로 달리고 자살미수를 이르키는 생질 칼 후견인으로 고민하는 등, 일시 작곡이 정체되었으나, 이런 고뇌의 중에 다 쓴 [교향곡 제9번]이나, [미사 솔레움] (Missa Solemnis)이란 대작, 피아노-소나타와 현악4중주곡 등의 작품들은 그의 미증유의 경지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1818년의 두 번째 위기때에는 후기의 서곡집(序曲集)에 대표되는 것처럼 스럼프 (slump)에 빠졌으나, 호모포니 (Homophony)의 全盛이었던 당시에 있어서 바흐의 遺産 [對位法, Kontrapunkt]   폴리포니 (polyphony)를 연구했다. [對位法]은 중기에 있어서도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대대적으로 취입 (取入)하는 것에 성공해서 위기를 넘었다. 만년의 현악4중주곡(絃樂4重奏曲), [피아노 소나타], [미사 솔레니움 = 장엄미사, Missa solemnis], [교향곡 제9번, Ninth Symphony] 등이 후기의 대표작들을 작곡했다.

1826년12월에 폐염에 더해서 황달 등 병상(病狀)이 급격히 악화되어 이후 와병 상태가 되었다. 병상 중에 10번째의 교향곡에 착수하나, 미완성으로 다음해 1827년3월26일에 간경변( 肝硬変)으로 56년의 생애를 끝내다. 그의 장례식에는 2만명의 사람들이 참가 했으며, 슈베르트(다음해에 사망)도 참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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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mpositions_by_Ludwig_van_Beethoven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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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Handel, G. F. (1685-1759)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culture/135

2009 Haydn (1732-1809)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austria/music/109

2010 Schumann, R. (1810-1856)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240 

2011 Liszt, F.  (1811-1886)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austria/music/219

2011 Mahler, G. (1860-1911)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europe/culture/218

2012 Mendelssohn, F. (1809-1847)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139     

2013 Wagner, R. (1813-1883)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296

2014 Bach, C.P.E. (1714-1788)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84 

2019 Schumann-Wieck, Clara (1819-1896)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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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 출처 일부 - Wikipedia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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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지열 (Ziyul Song) / www.eurasiatour.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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