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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수회( 退修會) - 재독 유학생 학술 모임 [후에 학술연구회 개칭]

       [재독 한인총연합회]의 모태(母胎) 관하여 

1960년대 당시 서독에 유학하는 대학생들의 모여 학술 토론을 하면서 수양을 한 모임이었기에 처음 퇴수회(退修會, Toesuhoe)라 칭해져 10차까지 가졌으며 11회부터 [학술연구회]로 개칭하였다. 이 모임에서 의견이 모아서 오늘의 방대한 조직 [재독한인총연합회]의 모태가 되었다. 처음에 좋은 뜻을 갖고 가진 모임에 몇 분의 [동백림사건]에 연류된 분도 있어서 약간의 의문과 오해도 가져왔다.

이 뜻있는 모임을 준비하여 추진한 분들이 이미 고인이 된 분이 많아서 자료가 점차 소멸되고 있으며 당시 유학생으로 모임에 참석한 분들이 학업을 마치고 한국의 여러 분야, 즉 학계와 정계 그리고 경제발전에 이바지 한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들이 많이 있다. 좀 늦었지만 현재의 생존하는 분들과 활동한 분들을 정리하는 것도 후대를 위해서 매우 주요하다고 여긴다.

특히 2016년은 독일뿐 아니라 처음으로 유럽에 수학 및 활동하는 교포 7개국에서 모여 역대 최대의 모임을 가진 [Sontra의 퇴수회] 50주년인 되는 해이다. 이 모임을 마련한 당시의 간사장는 김재관 박사이다. 초창기에 관여한 최연상이며, 귀국 후에 크게 활동한 분으로 아직 생존하고 있다.   

당시의 어떤 분들이 퇴수회의 모임을 준비하고 이 회를 통해서 창립된 [재독한인회/ 재독유학생회]에 대해서 현재 갖고 있는 자료에서 언급하여 본다. 50여년 전의 모임으로 정확한 자료들이 결여된 곳이 많다. 앞으로 이 기사의 게재를 통해서 더 많은 정확한 자료들이 보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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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학술모임 [퇴수회] (退修會)

1962년10월, Muenchen에서 개최,

참석자 수 및 준비위원 미상

학술 강연회를 가지면서 재독한인회 창설의 필요성을 논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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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술모임 [퇴수회]  

1963년 04월 24일부터, Muenchen의 Gasthof

참석자 수 및 준비위원 미상

제3회 퇴수회 개최 공고와 [재독한인회] 창립총회 소집 공고를 하기로 결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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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학술모임 [퇴수회]

1963년10월25일부터

Duisburg-Beeckenwerth, Pestalozzidorf 41에서 개최.

참석자 수 25명 및 준비위원 미상

      [재독한인회] 창립총회: 1963년 10월 26일

전 독일에 있는 한인들의 동의를 얻은 다음 결성하자는 안과 일단 한인회를 결성한 다음 인준을 받자는 반대 안을 표결에 부친 결과 13:12로 제1안이 가결되어 회칙을 토의하고 아래와 같이 임원을 선출함.

초대 회장 박 종서 (朴鍾緖, Muenchen, 1982년 별세)

부회장: 김 재관 (金在官, Duisburg)1) 및 김웅 (金 雄, Bonn, 별세)

간사장: 공 광덕 (孔光德, Bonn, 별세)

회칙 작성자: 한형건 (韓亨健, Frankf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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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학술모임 [퇴수회]

일시: 1964년04월24일부터,

장소: Starnberger See (Muenchen 근처, Bayern)에서 개최.

참가자: 95명 (당시 유학생 외에 연수생 그리고 1963년12월에 서독 광산에 취업 차 온 1진의 대표자 김윤희 참석)

     (c)송지열 (소지) - 1964년4월 남독 바이에른 주의 Starnberger See에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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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 재독한인회 총회: 1964 04 26      

1)    재독한인회 회칙을 제정 및 통과함.

2)    임원선출

제2대 회장: 윤이상 (尹伊桑, Berlin, 별세)

부회장: 박찬기 (朴贊機, Frankfurt), 노청자 (盧淸子, Muenster)           

간사장: 김려수 (金麗壽, Bonn) (2)

감 사 : 안석교  (安碩敎, Muenchen)

3)    차기 퇴수회 준비위원을 선출함. – 김려수, 김재관, 윤이상, 박찬기, 김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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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학술모임 [퇴수회]

일시: 1965년 03월 26일 ~ ?일

장소: Haus der Jugend, Weilburg-Odersbach (Limburg근처)

참가자: 55명

     제3 재독한인회 총회: 19653 28

1)    회칙 개정 – 부회장 제도를 폐지하고 지방 회장들로 구성된 간사회(幹事會)를 운영위원회로 고쳐 그의 지위를 강화하고 전의 부회장 직과 동일한 권한을 주어 지방한인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 분위기를 조성키로 함 

2)    1965/1966년도 한인회 임원을 선출함.

3 대 회장 전희수 (全熙洙, Berlin 교수) (2010년 별세)

간사장: 김재관 (金 在官, Muenchen) (1)

감사: 金聖培 (Koeln), 元苾昊 (Koeln)

운영위원장: 이용구 (李容九, Muenchen), 부위원장: 심상월 (沈相月, Aachen 학생)

3)    차기 퇴수회 준비위원을 선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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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송지열 (소지) 당시 서독 라인란트-팔츠 주의 Idar-Oberstein의 퇴수회 참가자

6 학술 모임 [퇴수회]

일시 : 1965년10월25일~30일 (5박6일)      

장소: Jugendherberge, 658 Idar-Oberstein/Nahe, Rheinland-Pfalz 

참가 인원: 3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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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총회

안건 – 사단법인 등록을 위한 1차 정관 개정

오전 10시15분부터 사단법인 등록을 위한 회의를 시작함.

사단법인 등록에 앞서, 회칙을 개정하고 한인회 기구를 변경하여 기구의 기능 발휘를 총회 중심으로 행사하도록 하다.

결의 사항

  1. 회장은 대회적으로 회(會)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총회를 주재하다.

2) 간사장은 총회에서 가결된 사항을 집행한다.

3) 운영위원회는 중요한 사항을 총회에 건의한다.

사단법인 등록의 동의안을 총회 재석인원 33명 만장일치의 찬성으로 가결하다.

차기 퇴수회 준비위원을 선출하다.

김재관, 김형배 (金亨培, Marburg), 이덕호, 문계연, 김연수 (金淵洙, Frei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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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학술모임 [퇴수회]

일시: 1966년5월 28 ~ 6월 2일,

장소: Ernst-Reuter-Schule, 6443 Sontra / Hessen, 준비위원

참가자 ?  유럽 7개국 (덴마크, 벨기에,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화란)에서 참가 

  (c)송지열 (소지) - 1966년6월 서독 중부 헤쎈 주의 Sontra에 참가자들 (서독 외 7개국)

     제4 재독한인회 총회 - 1966년6월2 일 10시30분

1965/1966년도 결산보고를 김재관 간사장이 하여 통과시킴. 

1966년3월22일 사단법인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여 Bonn 지방법원 Registeramt에 제출.

한인회 회칙의 독문 번역본 - 제2차, 제3차 한인회 총회 회의록의 독문 변역 문 및 한인회 창립 유지(有志)들의 서명 부 제출 함.            

등록번호: 19VR 3155 vom 21. Juni 1966

독문은 [Verband Koreanischer Student in Deutschland  e.V.]/ 재독한인대학생회)로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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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67년도 임원을 선출함.

4대 회장 이면석 (李冕錫, Frankfurt 은행원)

운영위원장: 오철수 (吳哲洙, Erlangen)

간사장 이덕호 (李德浩, Muenchen)  (3)

감사: 김성배 (Koeln), 박환덕 (朴煥德, Muenc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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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학술모임 [퇴수회]

일시: 1966년 10월 24일 ~29일     

장소: NRW 주의 Iserlohn에서 개최                             

참가자 수? (Bielefeld 근교 간호학교의 학생 2명과 다른 연수생들 참가)

준비위원 이덕호 간사장 외 4명        

      (c)송지열 (소지) – 정기총회없이 가진 Iserlohn의 퇴수회 참가자 일동 사진

임시총회와 결의안에 대한 정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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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학술모임 [퇴수회]

일시: 1967년 4월 20일부터 

장소:   Rieneck Burg, Schlossburg 1, 8781 Rieneck / Bayern

참가자 수: ? (작성자 참가)  

준비위원 이덕호 간사장 외 ?명 

     제5차 재독한인회 총회: 1967 4 22

1)    1966/67년도 사업 및 결산보고 (이덕호 간사장)를 받고 통과시킴. 

2)    1967/68년도 임원을 선출함.

5대 회장: 권혁면(權爀冕, Bochum 교환교수)

간사장: 송지열 (宋智烈, Bochum 학생) (5)

운영위원장: 차인석 (車仁錫) Freiburg) (4) - 운영위원회에서 선출됨.

감사: 이영빈 (Duisburg), 김용덕 (Erlangen)

3)    제10차 퇴수회 준비위원을 선출함.

송지열, 이영빈, 김공부 (Aachen), 김병권 (Frankfurt), 노금자(Koeln)

4)    사업책정:

5)    재정 및 회비 책정에 관하여 임원회에서 정하기로 가결함.

6)    Ruhr지방에 있는 한인들을 위한 교양강좌를 한인회 사업으로 책정함.

임원회서 회지 발간 구상을 결의하였으나, 동 베를린 사건으로 추진 중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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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학술모임 [퇴수회]

일시: 1968년 4월 2일 – 6일 (4박5일간)

장소: Naturfreundehaus, 6751 Trippstadt, Kaiserslautern

참가자 : 65명 (독일인 5명 포함, 작성자 참가) 

준비위원 송지열 간사장 외 4명

전 간사장 들의 퇴수회 준비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들었을까? 한 예를 언급하여 본다

퇴수회 수행을 위한 장소 답사, 강연을 할 강사 들과 문의 연락, 필요한 경비의 보조금을 허락과 신청을  위해서 여러 관계기관에 독문 편지, 그리고 회원들에게 통시서 및 신청서 발부 및 발송 등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개최 기간 중의 추진 업무 그리고 마친 후의 정리 등.

프로그램과 경비 내역

첫째 날 : 17시까지 도착, 20시 회장의 인사와 개회 선언

둘째 날: 오전 2시간 강연, 오후 그릅 연구 / 저녁: 한인회 정기총회 (1)

셋째 날: 오전 2시간, 강연, 오후 견학 / 저녁: 한인회 정기총회 (2)

넷째 날: 오전 2시간 강연, 오후 토론 / 저녁: 한독친선의 밤

다섯째 날: 오전 2시간 종합토론, 오찬 후 

결산보고서 (1968년4월1일 – 9월30일)

수입: 참가비 1‘435.00 / 보조비: KISK 1’999.64, VDS 2’135.26, 보유금 2’514.31 총수입 ‘8’084.21

지출: 왕복 여비 2’802.20*), 숙식비 2’532.94, 강사 사례비 및 한독 친선의 밤 841.55, 통신비 및 기타 539.18, 임원회 경비 및 간사장 활동비 899.86, 정리비 및 비품대 266.49 총지출 7’882.22 잔고 201.99

*) 프랑크푸르트 본역과 회의 장소간을 대절버스를 이용하여 여비도 절감되고 편리하였음.

KISK = Kreis fuer Interkontinentale Studentenkontakte

VDS = Verein Deutscher Studenten e.V

임원 특히 간사장은 임기에 한 번이면 족한데 김재관 간사장과 이 덕호 간사장 그리고 본인(송지열) 2번씩의 모임을 준비해서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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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차 재독한인회 총회: 1967 4 20

  1. 1967/68년도 사업 및 결산보고를 송지열 간사장이 하고 통과시킴.
  2. 회칙을 개정함.

제11조 „회장 및 간사장을 정기총회 시 - - „의 조항을 „회장, 운영위원장, 간사장을 - -„ 개정

제18조 2항을 삭제

제21조 „본회 산하에 학술연구기관인 „퇴수회“를 - -„의 조문을 „본회에 학술연구회를 --“로 

  1. 1968/69년도 임원을 선거함.

6대 회장에 차인석 (Freiburg 학생)

운영위원장: 송지열 (Frankfurt 학생)

간사장: 양병희 (Bochum학생)

감사: 나준수 (Marburg 학생), 정소량 (Boehlingen  연수원)

사업계획 및 예산안 작성을 임원회에 일임하기로 함..

참가자 회비 (DM 35) 독일 외무부의 산하 기관을 통해 재정 지원을 받음

준비에 어려움은 운 총회에서 선출된 양병희 간사장이 간사장으로 인수를 가지 않았으며, 또한 차인석 기 중에 귀국으로 간사장이고 운영위원장인 송지열이 회장 대리와 간사장의 업무를 겸해서 혼자서 다음 모임을 준비 개최케 함. (사정상 1968/69 겨울학기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에 등록을 위해 1968년11월초에 취리히로 이전하였으나  이 곳에서 독일을 방문하여 준비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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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학술모임 [學術硏究會

일시: 1969년 2월 19일 – 22일 (3박4일간의 국문 및 독문 각 1면)

장소: Heimvolkshochschule, Falkenstein/Taunus

참가자 수: 36명 (독일인 포함)

 (c)송지열 (소지) - 1969년3월 헤쎈 주 Falkenstein/Taunus [11차 학술연구회] 

     제7 정기 총회: 19692 21 

1968/69년도의 사업 및 결산보고를 송지열 회장 겸 간사장이를 하고 통과됨. 

개정된 회칙에 의해서 1969/1970년도 임원 선출을 함.

7대 회장에 정 규화 (鄭奎和, Muenchen 학생)

간사장: 이정립 (李貞立, Frankfurt 학생)

운영위원장: 김순겸 (Mainz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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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자격을 재독교민으로 확대하고 회장단의 임무 조항 신설 및 부회장의 위상을 강화하는 제2차 정관 개정안이 통과 그리고 “사단법인 재독한인회”로 등록이 되다.   

현 사단법인 재독한인 총연합회 아래 홈페이지에 한인회/유학생회 일부 자료 있음. / http://homepy.korean.net/~germany/www/introduction/history.htm   

1960년 대 대한민국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멀고 먼 타향인 유럽 그리고 독일에 와서 외롭고 어려운 유학 및 연수 생활 그리고 1963년12월에 힘든 광산에 1966년2월부터 병원에 취업으로 일하던 교포들에게 일년에 한두 번의 큰 학술모임인 [퇴수회]가 10여 차레 개최되여,

연구분야를 토론하며 한국의 발전을 걱정하고 또 싸인 회포를 풀수 있는 그리고 한독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밤 행사 또한 [현 재독 한인총연합회]의 모체의 역할을 한 퇴수회는 필요로 하였다. 이 학술모임의 추진을 위해서 독일 외부성의 관계 기관과 [독일대학생협회] 등의 재정 후원이 있어서 가능하였다. 

이 모임은 처음에는 유학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나 차츰 당시 기업체 연수원, 직업학교 (간호사 양성 기관)에 수업 차 온 사람들, 광산이나 병원에 근무한 한인들이 참가하여 [유학생회]에서 [한인회]로 병경 발전하였다. 즉 처음 유학생 모임으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취업자들 그리고 지금은 상사 직원으로 파견된 교민으로 구성이 다양화 되었다. 

당시 60년대의 유학생들의 학비 조달을 보면 장학금을 탄 소수, 공식으로 송금은 되지 않았으나 인편으로 받아 생활하는 자비 유학생 그리고 소위 “알바” (Arbeit)로 공부하는 입장이었다.  1964년에 5월까지 환률이 1 미불이 130원이 255대로 절하가 됨으로 송금의 부담도 더 켜져서 받기가 힘들었던 때이다. 서독 정부에서는 이때에 정식학생으로 등록한 외국 유학생들에게 방학 때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Steuerkarte]를 발부하여 주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감수하였으나  법적으로의 어려움은 없었고 또한 당시 독일에는 방학 때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어째든 서독 정부와 여러 기관에서 한국의 경제개발 계획 추진에 필요한 차관 제공, 유학생들에게 장학금 및 학술모임의 재정지원, 그리고 광산, 병원, 조선소 등에 취업의 기회,

여러 분야의 견습생으로 배움의 기회를 준 참으로 감사한 나라이다.

이 은혜를 상기시켜 보답하는 마음과 방법을 연구하여 봄도 좋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윤리 중의 하나가 받은 도움에 대해서 은혜를 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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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과 직장의 바쁜 일정 중에도, 퇴수회의 준비와 재독한인회/유학생회의 임원으로 수고한 분들 중에 현재 아는 생존하는 분들의 간단한 활동 사항을 언급하며 앞으로 가능하면 더 구체적으로 조사하여 기록에 남기게 되기를 바란다. 주

(1)    창립총회 시에 부회장 그리고 제3차 총회 때 간사장으로 선출된 김재관 (金在官) 박사는 퇴수회를 2회 준비하였으로 귀국하여 상공부 차관보, 후에 표준연구소를 창설하고 초대 소장으로 활약하다 정년이 됨.

더 구체적으로 www.chogabje.com/premium/book/view.asp?sCidx=511 (조갑제 닷컴에서)

김재관 박사의 부인인 양혜숙(梁惠淑) 박사는 60년대 독일 튀빙겐대학교에서 유학하였으며 1976년부터 약 30년간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96년에  [한국공연예술원]을 창립하여 초대 회장으로 2008년 이후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 .http://youlhwadang.co.kr/auth/4353  

(2)    1964년 제2차 한인연합회 총회에서 간사장으로 선출되여 수고한 김려수 (金麗壽) 박사는 학위를 마치고 서울대학교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은 후에 정년퇴직 하였다. 파리 소재 UN의 산하기구 UNESCO에 주요 직책을 맞고 근무.

(3)    4대 간사장으로 선출되여 수고한 이덕호(李德浩) 박사는 서강대학교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으며 최근에 [대 독어사전을 편찬하였다.

더 자세히: http://home.sogang.ac.kr/sites/germany/intro/Pages/prof_008.aspx

(4)    제6차 한인회 총회에서 [운영위원장], 제7차 한인회 총회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여 활동한 차인석 (車仁錫) 박사 임기 중에 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학교에서 오래 교편 생활을 하였으며 지금은 정년되었다. 이 기간 중에 [한국 유네스코]의 임원 등 여러 협회의 주요 역할을 하였다.

차인석  – 우리집의 세계화  (2015년9월 발행) / http://moonji.com/book/9692

(5)    위의 [퇴수회]의 약력을 작성하여 글을 올리는 송지열은 1964년에 쾰른에  유학으로 시작 9회 퇴수회/제5차 정기총회에서 간사장으로, 10회 퇴수회/제6차 총회에서 운영위원장으로 선출되여 [퇴수회]과 [학술연구회]을 각 한 번씩 준비 추진하였다. 1968/69년 겨울 학기부터 [취리히대학교]에서 수학, 1974년12월에 석사학위 (MA)를 취득한 후, 스위스의 국제 여행사 (Kuoni AG)에 근무 후에 자영 여행사 운영. 정년 된 2000년부터 관광매체에 관여. 

그간 학술연구회와 재독한인회를 위해 봉사 활동한 분들 중에 언급되지 못한 분도 있으며 작고한 분들도 많이 있어서 자료가 소실되고 있어서, 이제까지의 모은 자료 일부를 토대로 우선 위의 기사를 올린다. 거듭 언급하거니와 이 기사 게재로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역사적 기록이 남게되기를 바라며, 혹시

보충되는 자료를 보내 주시는 분께는 매우 감사하게 받아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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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지열 (宋智烈, Zi-Yul Song) / This email address is being protected from spambots. You need JavaScript enabled to view it.

www.eurasiatour.info  /  https://www.facebook.com/ziyul.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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