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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urichTourism – 스위스 최대의 대학교 [취리히 대학교]의 본관 모습

University of Zurich (취리히대학교– 명문대학 

[취리히 대학교]는 1832년에 주 정부에서 대학교 설립을 결의하고 1833년4월29일에 개교를 했다. 취리히 대학교는 종합대학교이며 주립 대학교이다. 현재 26’000명이 넘는 대학생 수로 스위스 10개 대학 중에 제일 크다. 학부는 신학부 (1525년부터), 법학부, 경제학부, 의학부, 수의학부, 철학부 (전체 학생의 약 반), 수학•자연과학부가 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학생이나 교수 출신으로 21명이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명성이 있는 대학교이다. / www.uzh.ch/index_en.    

스위스에는 주립대학교10개와 국립대학교  2개 있다. 주립대학교는 스위스의 주 [Canton]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대학교로 독어권에서는 5개로 바셀 (Basel) 대학교, 베른 대학교, 루체른대학교, 쌍트 갈렌대학교 (독어와 영어로 강의 실시함)와 취리히대학교이다. 불어권에4개로  제네바대학교, 로잔대학교, 프라이부르크대학교 (불어와 독어로 강의 함)와 뇌샤텔대학교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어 권에서는 루가노대학교 하나가 있다. 스위스 연방 정부에 속한 대학교로 독어권에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독어와 영어로 강의함)와 불어권에 로잔연방공과대학교가 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교는 바젤대학교으로 1460년에 설립 되었으며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대하교는 루체른 대학교로 2000년에 설립이 되었다. 그리고스위스에는 주립대학교10개와 국립대학교  2개 있다. 주립대학교는 스위스의 주 [Canton]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대학교로 독어권에서는 5개로 바셀 (Basel) 대학교, 베른 대학교, 루체른대학교, 쌍트 갈렌대학교 (독어와 영어로 강의 실시함)와 취리히대학교이다. 불어권에4개로  제네바대학교, 로잔대학교, 프라이부르크대학교 (불어와 독어로 강의 함)와 뇌샤텔대학교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어 권에서는 루가노대학교 하나가 있다. 스위스 연방 정부에 속한 대학교로 독어권에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독어와 영어로 강의함)와 불어권에 로잔연방공과대학교가 있다. /  www.youtube.com/user/uzhch

More pictureshttp://blog.daum.net/eurasiatourism/11086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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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s academicus 2018 (취리히대학교 개교기념일) 

4월 28일(토요일),  Irchel Campus에서 / www.uzh.ch/dies

UZH18  (c)Song, Zy - Prof. Dr. M.O. Hengartner (앞줄 중앙) & Pfof. Dr. M. Deuchler (뒷줄 왼편 첫번)   

도이흘러 (Dr. M. Deuchler) 교수는 한국학 전문가로서 금년도 문리대학 [명예박사]로 선정된 명예를 갖었다. 한국학도 언급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다음날 4월29일에 [취리히대학교 민속학 박물관]에서 도이흘러 교수의 공적에  대한 설명회와 영화상연이 있었다. www.musethno.uzh.ch/de/museum/aktuell/29.04.2018-Martina-Deuchler--Ein-Leben-mit-Kore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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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 of Asian and Oriental Studies 

위의 새 연구소/학부는 취리히대학교 (University of Zurich)의 인문대학 내에 2013년1월에 [동양학부/Ostasien Seminar]에 [이스람학], [인도학] 및 [젠더학 / Gender Studies]을 편입하여 새로운 학부 [Asien-Orient-Institut (AOI)]로 편입 개편한 것이다. 

그간 [동양학부]에서는 1950년에 중어과 [Sinologie Seminar]를 시작하여 1968년에 [일어과 / Japanologie]가 설립 되면서 2학과를 합하여 [Ostasien Seminar]로 만들어 저서 작년까지 약 50년을 이어왔다. 그 사이에 즉 1975년에 [한국과 / Koreanologie]가 마련 되여 제2부전공으로 강의가 실시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1978년에 중단이 되었으며, 30년 후인 2008년에 한국현대사의 강의가 있었으나 전공과목으로 승인이 되지 않고 2학기 후에 또 중단이 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재개될 것으로 여긴다.

최근에 아시아와 동방 (Orient)에 중점을 두고 새로 합한 학부에서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및 문화적 면에서 유럽에 주요한 지역으로 이미를 갖고 있다고 인정을 하였다. 취리히대학교에서는 이 주요성을 강조하고 앞으로 연구와 교육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 새로운 학부에 [한국학]이 다시 설립 되여서 연구와 배움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기사의 자료는 취리히대학교 교내지 [Journal]의 2013년12월에 발간한 6호에 실린 [Von Marrakesch bis Tokio]의 기사에서 참조하였다. 새로운 학부에 대한 홈페이지  /  www.aoi.uzh.ch/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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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대학 (University of Zurich)에서 [동양학] 발전사

[취리히대학교]는 스위스에서 동아시아 연구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0 년에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중국학에 관한 교수직을 설정 합니다. 이런 미비한 시작에서 취리히의 동아시아 연구는 국제적인 의미에 학업 능력뿐만 아니라 또한 인프라면 모두를 얻고 있다. 

중국학 (Sinologie) : 취리히 대학에서 동아시아 연구의 시작은 중국학을 위한 강사 설치를 정부의 결의에 의한 것이다. 즉 차르너 (Eduard Horst  von Tscharner, 1901-1962)의 강사 자리었다. 그는 1940년부터 중국어에 대한 전임 강사로 그의 연구 분야는 중국 연극, 문화 및 도교 철학이 포함 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 그는 또한  오늘날 [스위스 아시아협회의 전신인 [스위스 동아시아 문화 친선 협회]의 설립자의 일원이었다. 이 협회 전문 잡지는 아시아 연구 잡지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전문지가 되었다.

1964년에 네덜란드/화란 라이덴대학에서 공부한 로베르트 크라머 (Robert  P. Kramers, 1920-2002) 교수가  차르너 강사의 후계자로 취임했다. Kramers 교수는 고전 중국철학과 종교사 특히 유교 연구에 또한 Tscharner 강사가 설립하고 당시까지 계속된 전통적인 문학과 철학적인 전통에 합류했다. 동시에 Kramers 교수는 현대 중국에 대한 교과 과정을 개발하여 현대 중국 연구에 추진했다.     

일본학 (Japanologie) : 1968/69년 겨울학기에 [일본학과]가 새로운 교수 자리가 마련된 것이 결정되었으며 [동양학부] 즉 [Ostasiatische Seminar]가 설립되었다. 라이덴대학교에서 수학을 한 화란인 아우에한드 (Cornelius Ouwehand, 1920-1996) 박사가 초빙을 받았으며 그의 학문적 분야는 민속학 특히 오키나와와 류큐제도(諸島)의 연구였다.

1970년에 Muehlegasse 위치하는 세미나 건물에 중국학 및 일본학 그리고 1975년이후  한국학도 들어왔으나 이 과는 곧 단기간 후에 폐쇠되었다. 이 때에 도서관은 중국어, 일본어 및 외국어로 3분야로 구성되어 있었다.   

1983/84년 겨울학기에 Robert P. Kramers 교수는 동시에 명예교수로 임명되면서 퇴직하였다. 1986년에 Robert H. Gassmann이 그의 후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Tscharner 전 강사의 언어학적 전통을 계속하고 자기의 언어학 연구 관심사를 보충하였다. 같은 해에 Eduard Klopfenstein 교수가  Ouwehand교수의 후계자가 되었다. 독문학을 수학한 자로 그의 연구는 특히 일본 문학, 시 및 연극에 관심사를 가졌다.     

1992년에 새로 크게 증가되어 동양학부는 현재의 위치인 Zuerichbergstrasse 4번지로 이동하였다. 2002년에 중국학과에 현대 중국학에 대한 두 번째 교수직이 늘어나서 Andrea Riemenschnitter 교수가 초빙되었다. 2008년 중간에  Robert H. Gassmann 퇴임되었다. 전통적인 중국학 교수직에  Wolfgang Behr 교수가 후임이 되었다.

2005년에 Eduard Klopfenstein 퇴임하고, 2008년에 Raji C. Steineck  일본학과의 교수가 초빙되었다.

2010년에 독일의 장학재단 [Mercator-Professur]의 도움으로 일본학에 사회학 분야 연구 교수 자리가 확장되었다. David Chiavacci 교수가 이 사회학의 일본학의 첫 교수이다.

또한 도서관도 성장했다. 오늘날, Bibliotheken der Ostasienwissenschaften 도서관에는 잡지를 포함해서 17만부 이상의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중국학에 관한 것이 약  9만천부, 일본학에 관한 것이 3만6천부 그리고 서양서적이 4만6천권으로 유럽에서 좋은 명성을 갖고 가장 우수한 것에 속한다.

아시아-오리엔탈 연구소/학부 (Asien-Orient-Instituts)2013년1월1일에 [Ostasiatische Seminar]는 새로 구성된 취리히 대학교의  Asien-Orient-Instituts에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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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웨한드 (Prof. Dr. Cornelius Ouwehand) 교수의 業績에 대해서

恩師인 아우웨한드 敎授은 1920년11월10일에 네덜란드의 라이덴 (Leiden)에서 태어났으며, 1996년9월5일에 Alkmaar 근처 Heiloo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학자, 문학가, 예술애호가이었다. 그는 문학과 민속학 그리고 민요 연구에 업적을 남겼다. 오는 가을이 이 교수님이 스위스 취리히대학교에 일어과 주임교수로 초빙되어 온 것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그의 업적을 한 번 언급하여 본다.

그는 유년시절을 네덜란드의  Rotterdam과 Leiden에서 보냈다. 그리고 대학교육은 Leiden과 Utrecht에서 하였다.  그를 간단히 紹介한 것으로 다음과 같이 言及이 되고 있다. „코르넬리스 아우웨한드 (Cornelis Ouwehand)는 네덜란드의 人類學과 民俗學의 學者이었다.  그는 스위스 聯邦共和國에 있어서 日本硏究의 創始者이며,  그는 文學者와 藝術의 친구였다. 인류학과 민속학의 연구에 의해서 그의 作品들을 남겼다.“

1) 고등교육와 활동 분야식민지 관리 근무 박물관 근무

그는 1938년에  라이덴대학 (University of Leiden)a)에서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당시 신민지인 인도네시아 (Indonesia)의 민간 관리 (民間官吏)로 근무할  敎育課程을 [라이덴 대학교]에서 마쳤다.

1945년부터 1950년까지 그는 인도네시아에서 민간 관리로 服務하고 난 후에 네덜란드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근무 외에 日本語, 中國語, 文化人類學을 추가해서 수학했다.

1951년에서 1959년까지 라이덴 소재 國立民俗學博物館의 副官長으로, 1959년에서 1968년까지는 館長으로 일했다. 

2) 박사학위  논문그의 제1차 (1956-57년) 일본 체류에 이어 1958-59년 에 2차 일본 Tokyo에 연구차 체류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시기에, 일본인 유명한 민속학 학자 Yanagita Kunio (柳田國男)를 알게 되고 또한 그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그를 존중하게 된다.

1964년에 C. Ouwehand는 [라이덴대학]에서 [Namazu-E and  their Themes: an interpretative approach to some aspects of Japanese folk religion] 라는 논문으로 博士學位를 받았다.  즉 [나마즈-에] (魚猫-画)와 테마; 日本의 民俗宗敎 몇 가지 側面에 대한 解釋的 接近]이란 뜻이며, 이 博士論文은 라이덴 소재 [E.J. Brill]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

또한 이 책은 1970년에 [Namazue – 民俗적 想像力의 世界]라는 일본어 제목으로 小松和彦 (Komatzu Kasuhiko), 中沢新一 (Nakazawa Shinichi), 飯島吉晴 (Iijima Yoshiharu), 古家信平 (Furuie Shinpei)에 의해서 번역(飜譯)이 되었다.

이 飜譯은 교토(京都)의 도시샤(同志社) 大學 民俗學會의 타케다 조슈(竹田) 指導하에 의론(議論) 시리즈의 主題가 되었다.  1篇은 歷史, 社會機關에 덴쏘로 처음으로 등장했다.  飜譯文은 풍부한 圖解版으로 1979년에 도교의 세리카 쇼보 (Serika 書房)에서 다음의 題目으로 出版되었다.

[Namazu-E, 民俗的  想像力 世界].  여기에는 또한 아우웨한드의 最初의  주요한 조사가 包含되어 있었다. / www.doshisha.ac.jp

3) 50 전에교수로    활동

1968년 가을 학기에  그는 취리히 大學校  [Ostasien Seminar/ 東洋學部]의 日本科 主任교수 자리를 얻었고 1986년 정년 퇴직하기 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실제로는 새로운 후계자가 정해질 때까지 2년간 더 연장이 되었다.)  그는 스위스 연방공화국에 있어서 日本學 硏究의 創始者이었다.   

그의 업적으로 취리히대학교의 일본학과 주임교수로  후배들를 배출을 위한 가르침의 분야에 공헌을 했다.  여기에 대해서 아래와 별도로 더 구체적으로 언급을 한다. 

1973년에 유럽에 있어서, 일본학 보급을 위해서 [European Association for Japanese Studies] 조직이 London에서 창립되었다.  Ouwehand교수는  처음부터 참여하였으며 1975년에서 80년 사이 협회의 임원으로 활약하였다. 1976년에 처음으로 스위스 Zurich에서 새로 설립된 조직의 대회를 개최했으며 매 3년마다 개최된다. www.eajs.eu

이 조직의 대회로 제15회2017년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EAJS Conference] 대회가 개최되었다.  2020년에 제16회 대회로 벨기에 Ghent에서 개최된다. / www.nomadit.co.uk/eajs/eajs2017/index  

그는 또한 다른 면으로 연구 생활을 활발히 하였다. 그 하나로 1985년에  [Hateruma (波照間) - 南 류구(琉球)섬 文化의 社會宗敎的 面]에서 출판되었다.c) 즉 [八重山諸島] (Yaeyama Islands)의 한 섬 [하테루마]에서 의식 생활를 검사하는 民族지적 연구]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아우웨한드 (Ouwehand) 교수는 또한 文學作品 번역에 전념하여 소설 6편, 즉 노벨 문학상 수상자 Kawabata Yasunari (川端康成)와 Mishima Yukio (三島由紀夫)의  [金閣]를 화란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1985년에 화란에서 유명한 [마르티누스 Nijhoff 번역상]을 수상받았다.  

 Ouwehand교수의 [하테루마(波照間): [南 琉球島文化의 社会宗教的 面]란 제목으로 1985년 라이덴에서 출판되었으나 실제로는 1986 年에 登場했다. 이것은 [야에야마 제도(諸島)의

한 섬인 하테루마에 있어서 의식(儀式) 생명의 풍부한 아카운트 이었다.  이 것은 2번의 장기 체재로 첫 번은 1965년4월부터 12월까지, 두 번째는 1975년10월부터 1976년 2월까지 그리고 여러 번의 단기 체재한 현자답사(필드워크)에 基因하고 있다.   

Ouwehand교수는 또한 문학작품 번역에 전념하여 6편 즉 川端康成) (Kawabata Yasunari)와 三島由紀夫 (Mishima Yukio)의  [金閣]를 화란어로 번역하였다. 그는 1985년에 화란에서 유명한 [마르티누스 Nijhoff 상]을 수상 받았다. 

1992년에 Ouwehand 교수는 고향의 나라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거주한 곳은 바로 뒤에 모래 언덕이 있고 북해(北海)에 접한 헤이루 (Heiloo)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그에게 시력(視力)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걷기를 좋아하고 파도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곳으로 옮긴 것이다.

1996년9월5일에  Heiloo (Alkmaar  근처의 마을)에서 그의 변화  많은 생애(生涯)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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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재직기간 1968년11월에서 1986년 정년퇴임하기까지 배출한 제자들은 다음과 같다.

A) 석사 [Lizentiat = M.A. 해당] 학위를 마친 자들:

1) 1973   Song, Ziyul: Entwicklung und Eigenart des japanischen Touristen in Europa,

2) 1975   Bernegger, Brigit: Die Beziehung zwischen Religion und Kunst in der „Lehre von der grossen Grundlage“ (Ômoto-kyô)

3) 1976  Ackermann, Peter: Yamada Kengyô – Untersuchungen zu Person und Werken des Begründers Yamada Koto-Schule

4) 1977  Hwang-Koller, Regula: Einige Aspekte der Thema-Rhema-Glederung im Japanischen

5) 1980  Hunziger, Franziska: Higuchi Ichiyô –„Die letzte alte Japanerin, die erste neue“

6) 1981  König, Regula: Oshima Nagisa – Seine Interpretation der japanischen Nachkriegsgesellschaft (und besonderer Berücksichtigung des Films „GISHIKI“

7) 1981  Loosli, Urs: Die erste japanische Grammatik des Fujitani Nariakira

8) 1982  Yamanaka,-Hiller, Barbara: Die japanische Nachkriegslyriker Yoshioka Minoru

9) 1983  Studer, Silvia: Shimazyki Tôson und das Burakuproblem in „Hakai“ – Die Darstellung des Burakuprlblems in der modernen japanischen Literatur der Vorkriegszeit

10) 1983  Rhyner, Bruno: Nihonjinron – Die Suche nach einer japanischen Identität

11) 1984  Schwaller, Dieter: Takuan – ein Zen-Meister der Tokugawa-Zeit

12) 1987  Lewinsky-Sträuli, Marianne: Internationale und nationale Avantgarde in Japan – Der Film „Kurutta ichipeiji / Eine verrückte Seite“ von Kinugasa Teinosuke, Kawabata Yasunari, Inoue Masao

13) 1988  Langemann, Christoph: Das Kaifuso – Eine Sammlung chinesischsprachiger Gedichte aus dem alten Japan

B) 박사학위 (Disertation)

1) 1985  Loosli, Urs: Fujitani Nariakira and his Grammar – An Approach to Linguistics in Pre-Modern Japan

2) 1985  Bernegger, Brigit: Ômoto-kyô, die Lehre vom grossen Ursprung – historische, religions-Philosophische und kunstgeschichtliche Aspekte  

3) 1988  Schwaller, Diener: Der japanischerÔbaku-Mönch Tetsugen Dôkô

C) 교수자격 학위/ (Habilitation)

1) 1979  Klopfenstein, Eduard: Tausend Kirschbäume – Yoshitzune, ein klassisches Stück des japanischen Theaters der Edo Zeit . Studie, Übersetzung, Komentar

2) 1989  Ackermann, Peter: Kumiuta – Traditional Songs for Certificates. A Study of their Texts and  Impl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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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의 자료 출처:

1) Prof. Dr. Klophenstein의 추도문에서         

2) Fritz Vos와 Jan van Bremen의 Cornelis Ouwehand (1920-1996)의 추도에서]

3) Wikipedia에서 /  https://en.wikipedia.org/wiki/Cornelis_Ouweh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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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a and Europe - 연구프로젝트 / www.asienundeuropa.uzh.ch/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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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 (Voelkerkunde, : Ethnology)

민속박물관 (Voelkerkundemuseum, Pelikanstrasse 40)이 있다. 이 박물관의 관장은 민속학과의 정교수인 플리취 (Prof. Dr. M. Flitsch)는 중국의 인삼에 관한 제목 «Der Ginsengkomplex in den han-chinesischen Erzähltraditionen des Jiliner Changbai-Gebietes»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태생인 교수이다. /  www.musethno.uzh.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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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Exhibition)

Visions of a Museum Partnership - Switzerland and Uganda

2018년 4월 13일 - 2019년 1월 6일 

UniMuseum  (c)Z.Song -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민속학과 우간다 문화센터 협력 전시회 

       www.igongo.co.ug/index.php/cultural-center/eriijukiro-museum 

2018년7월12일: 취리히대학교 민속박물관에서 출판기념 및 강연회 개최

Museum Cooperation between Africa and Europe                                        A New Field for Museum Studies

www.transcript-verlag.de/en/detail/index/sArticle/4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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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초의 한인 박사학위 - 취리히대학교에서 

이관용씨는 백여년 전 1913년에 영국에 유학 차 와서 옥스포드 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17년에 스위스 취리히로 옮겨서, 1918년부터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University of Zurich)에서 수학을 한 후에 1921년에 한인으로 처음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즉 그에 대해서 위키백과에 다음과 같이 언급이 되고 있다.

“이 관용 (李灌鎔, 1994-1933)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부위원장으로 김규식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의 한국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고, 후에 구미위원부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1년 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은 이관용(李灌溶, 李瓘鎔, 李鑵鎔, 李冠鎔, 李灌龍) 등의 여러 가지 한자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 보면 출생 년도가 1993년으로 된 곳이 있고 또한 박사 취득도 1923년으로 되어있으며, 논문의 제목이 한글로만 [의식의 근본 사실로서의 의욕론]”  언급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행이 지난 9월7일에 취리히 소재 [취리히 중앙도서관겸 취리히대학교 본부도서관]에서 90여년 전에 발간된 그의 박사 논문책자의 원본을 발견하였다. 책자를 보면 1921년 (획득과 출판의 정확한 날자는 언급이 안됨)에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로 통과 되었으며, 논문의 독문 원 제목은 [Das Wollen, als Grundtatsache des Bewusstseins]으로 철학과 심리학에 관한 것이다. 국본 80페이지의 책자이다.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관용 박사는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 최초의 박사학위 취득자가 될 수 있다. 1921년 이전에 유럽에서 한국인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첨부된 이력서에 보면 출생 년도가 1893년이 아니고1894년으로 되어 있다.

그는 안타깝게도 사고로 일찍 사망하였지만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한국인이다. 즉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로서 활동을 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워원부의 부위원장으로, 1920년1월에 한국적십자사의 [구주위원장]으로 참가 등으로 2008년에 [독립유공자]로 선정이되었다. 이 분야에 대해서 많이 언급을 하고 또 연구를 한 논문도 발견되었다. 귀국 후 1925년에 동아 일보 기자/특파원으로 유럽 등지를 다니면서 기사들을 쓴 것도 많이 인용 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자 및 학자로 언급은 귀국 후에 연희전문대에서 교사로 강의를 한 것과 한국에 있어서 [서양철학]의 창시학회의 일원으로 언급이 되고, 그렇게 많이 언급이 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 분의 학문분야에 대한 업적도 더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참고자료:  

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  http://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11766&ipp=10

취리히 대학교에 대한 (위키백과에서) / http://en.wikipedia.org/wiki/University_of_Zu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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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일제강점기)에 석사학위를 한 이한호(Rhi Hanho)라는 훌륭한 분이 있다.

www.eurasiatour.info/index.php/en/switzerland/other/352-dr-hanho-r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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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지열 (Ziyul Song) / www.eurasiatour.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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