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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urichTourism – 스위스 최대의 대학교 [취리히 대학교]의 본관 모습

University of Zurich (취리히대학교– 명문대학 

[취리히 대학교]는 1832년에 주 정부에서 대학교 설립을 결의하고 1833년4월29일에 개교를 했다. 취리히 대학교는 종합대학교이며 주립 대학교이다. 현재 26’000명이 넘는 대학생 수로 스위스 10개 대학 중에 제일 크다. 학부는 신학부 (1525년부터), 법학부, 경제학부, 의학부, 수의학부, 철학부 (전체 학생의 약 반), 수학•자연과학부가 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하여 학생이나 교수 출신으로 21명이 노벨상 수상자가 있다. 명성이 있는 대학교이다. / www.uzh.ch/index_en.    

스위스에는 주립대학교10개와 국립대학교  2개 있다. 주립대학교는 스위스의 주 [Canton]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대학교로 독어권에서는 5개로 바셀 (Basel) 대학교, 베른 대학교, 루체른대학교, 쌍트 갈렌대학교 (독어와 영어로 강의 실시함)와 취리히대학교이다. 불어권에4개로  제네바대학교, 로잔대학교, 프라이부르크대학교 (불어와 독어로 강의 함)와 뇌샤텔대학교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어 권에서는 루가노대학교 하나가 있다. 스위스 연방 정부에 속한 대학교로 독어권에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독어와 영어로 강의함)와 불어권에 로잔연방공과대학교가 있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대학교는 바젤대학교으로 1460년에 설립 되었으며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대하교는 루체른 대학교로 2000년에 설립이 되었다. 그리고스위스에는 주립대학교10개와 국립대학교  2개 있다. 주립대학교는 스위스의 주 [Canton]의 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대학교로 독어권에서는 5개로 바셀 (Basel) 대학교, 베른 대학교, 루체른대학교, 쌍트 갈렌대학교 (독어와 영어로 강의 실시함)와 취리히대학교이다. 불어권에4개로  제네바대학교, 로잔대학교, 프라이부르크대학교 (불어와 독어로 강의 함)와 뇌샤텔대학교이다. 그리고 이탈리아어 권에서는 루가노대학교 하나가 있다. 스위스 연방 정부에 속한 대학교로 독어권에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독어와 영어로 강의함)와 불어권에 로잔연방공과대학교가 있다. /  www.youtube.com/user/uzhch

More pictureshttp://blog.daum.net/eurasiatourism/11086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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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s academicus 2018 (취리히대학교 개교기념일) 

4월 28일(토요일),  Irchel Campus에서 / www.uzh.ch/dies

UZH18  (c)Song, Zy - Prof. Dr. M.O. Hengartner (앞줄 중앙) & Pfof. Dr. M. Deuchler (뒷줄 왼편 첫번)   

도이흘러 (Dr. M. Deuchler) 교수는 한국학 전문가로서 금년도 문리대학 [명예박사]로 선정된 명예를 갖었다. 한국학도 언급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다음날 4월29일에 [취리히대학교 민속학 박물관]에서 도이흘러 교수의 공적에  대한 설명회와 영화상연이 있었다. www.musethno.uzh.ch/de/museum/aktuell/29.04.2018-Martina-Deuchler--Ein-Leben-mit-Kore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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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itute of Asian and Oriental Studies 

위의 새 연구소/학부는 취리히대학교 (University of Zurich)의 인문대학 내에 2013년1월에 [동양학부/Ostasien Seminar]에 [이스람학], [인도학] 및 [젠더학 / Gender Studies]을 편입하여 새로운 학부 [Asien-Orient-Institut (AOI)]로 편입 개편한 것이다. 

그간 [동양학부]에서는 1950년에 중어과 [Sinologie Seminar]를 시작하여 1968년에 [일어과 / Japanologie]가 설립 되면서 2학과를 합하여 [Ostasien Seminar]로 만들어 저서 작년까지 약 50년을 이어왔다. 그 사이에 즉 1975년에 [한국과 / Koreanologie]가 마련 되여 제2부전공으로 강의가 실시되었는데 유감스럽게도 1978년에 중단이 되었으며, 30년 후인 2008년에 한국현대사의 강의가 있었으나 전공과목으로 승인이 되지 않고 2학기 후에 또 중단이 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재개될 것으로 여긴다.

최근에 아시아와 동방 (Orient)에 중점을 두고 새로 합한 학부에서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및 문화적 면에서 유럽에 주요한 지역으로 이미를 갖고 있다고 인정을 하였다. 취리히대학교에서는 이 주요성을 강조하고 앞으로 연구와 교육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이 새로운 학부에 [한국학]이 다시 설립 되여서 연구와 배움의 대상이 되기를 원한다.  기사의 자료는 취리히대학교 교내지 [Journal]의 2013년12월에 발간한 6호에 실린 [Von Marrakesch bis Tokio]의 기사에서 참조하였다. 새로운 학부에 대한 홈페이지  /  www.aoi.uzh.ch/en.html 

Asia and Europe - 연구프로젝트 / www.asienundeuropa.uzh.ch/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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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 (Voelkerkunde, : Ethnology)

민속박물관 (Voelkerkundemuseum, Pelikanstrasse 40)이 있다. 이 박물관의 관장은 민속학과의 정교수인 플리취 (Prof. Dr. M. Flitsch)는 중국의 인삼에 관한 제목 «Der Ginsengkomplex in den han-chinesischen Erzähltraditionen des Jiliner Changbai-Gebietes»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독일태생인 교수이다. /  www.musethno.uzh.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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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Exhibition)

Visions of a Museum Partnership - Switzerland and Uganda

2018년 4월 13일 - 2019년 1월 6일 

UniMuseum  (c)Z.Song -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민속학과 우간다 문화센터 협력 전시회 

       www.igongo.co.ug/index.php/cultural-center/eriijukiro-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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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초의 한인 박사학위 - 취리히대학교에서 

이관용씨는 백여년 전 1913년에 영국에 유학 차 와서 옥스포드 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1917년에 스위스 취리히로 옮겨서, 1918년부터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University of Zurich)에서 수학을 한 후에 1921년에 한인으로 처음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즉 그에 대해서 위키백과에 다음과 같이 언급이 되고 있다.

“이 관용 (李灌鎔, 1994-1933)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의 부위원장으로 김규식 등과 함께 파리강화회의의 한국인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했고, 후에 구미위원부 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1921년 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한국인 최초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다른 이름은 이관용(李灌溶, 李瓘鎔, 李鑵鎔, 李冠鎔, 李灌龍) 등의 여러 가지 한자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 보면 출생 년도가 1993년으로 된 곳이 있고 또한 박사 취득도 1923년으로 되어있으며, 논문의 제목이 한글로만 [의식의 근본 사실로서의 의욕론]”  언급되어 있었다. 

그런데 다행이 지난 9월7일에 취리히 소재 [취리히 중앙도서관겸 취리히대학교 본부도서관]에서 90여년 전에 발간된 그의 박사 논문책자의 원본을 발견하였다. 책자를 보면 1921년 (획득과 출판의 정확한 날자는 언급이 안됨)에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박사학위로 통과 되었으며, 논문의 독문 원 제목은 [Das Wollen, als Grundtatsache des Bewusstseins]으로 철학과 심리학에 관한 것이다. 국본 80페이지의 책자이다. 이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관용 박사는 스위스뿐만 아니라 유럽 최초의 박사학위 취득자가 될 수 있다. 1921년 이전에 유럽에서 한국인으로 학위를 받은 사람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첨부된 이력서에 보면 출생 년도가 1893년이 아니고1894년으로 되어 있다.

그는 안타깝게도 사고로 일찍 사망하였지만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한국인이다. 즉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 언론인, 교육자로서 활동을 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 때, 대한민국임시정부 파리워원부의 부위원장으로, 1920년1월에 한국적십자사의 [구주위원장]으로 참가 등으로 2008년에 [독립유공자]로 선정이되었다. 이 분야에 대해서 많이 언급을 하고 또 연구를 한 논문도 발견되었다. 귀국 후 1925년에 동아 일보 기자/특파원으로 유럽 등지를 다니면서 기사들을 쓴 것도 많이 인용 되고 있다.

그러나 교육자 및 학자로 언급은 귀국 후에 연희전문대에서 교사로 강의를 한 것과 한국에 있어서 [서양철학]의 창시학회의 일원으로 언급이 되고, 그렇게 많이 언급이 되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앞으로 이 분의 학문분야에 대한 업적도 더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느낀다.    

참고자료:  

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  http://mpva.go.kr/narasarang/gonghun_view.asp?id=11766&ipp=10

취리히 대학교에 대한 (위키백과에서) / http://en.wikipedia.org/wiki/University_of_Zur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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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일제강점기)에 석사학위를 한 이한호(Rhi Hanho)라는 훌륭한 분이 있다.

www.eurasiatour.info/index.php/en/switzerland/other/352-dr-hanho-r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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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지열 (Ziyul Song) / www.eurasiatour.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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