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Beethoven2020-탄생250주년

Beethoven 2020베토벤 탄생 250주년

2020년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의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서 2019년12월16일에서 2020년12월17일까지 국제적인 수준으로 [베토벤 기념해]를 축하한다. 기념해인 2020]에는 다채로운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으며, 콘서트, 전시, 오페라, 영화, 댄스 및 연극의 공연 등을 1년간을 통해서 음악 체험을 제공한다. 또한 심포지엄과 교양 프로그램으로 베토벤의 작품을 여러 각도에서 알리게 된다.  

음악의 유명한 지휘자들 중에 초빙 객에는 Sir Simon Rattle와 그가 인솔하는 [런던 교향악단], Daniel Barenboim 및 Teodor Currentis 등이다. 연간 흥미 있는 프로그램은 [베토벤의 기념협회]의 이벤트 캘린더 [BTHVN2020]에 게재되어 있다. / www.bthvn2020.de/en/program/calendar-of-events

이 특별한 기회를 기해서, 방문객들을 위하여 [특별 베토벤 여행 패키지]를 작성하고 있다. 단체 여행에서 시작하여 적절한 숙박 정보까지 체류자들에게 상담해 드릴 예정이다. — www.bonn-region.de/bonn-region-en/beethoven-travel-packages.html

Beethoven 의 생애활동 (일부)

BthvnDenkm        ©Song Ziyul – Bonn 시의 중심부에 세워진  Beethovendml 의 동상

베토붼은 1770년12월16일 (12월17일에 유아세례을 받음), 신성로마제국 쾰른 대사교령 (현 독일령)의 본 (Bonn)에서 아버지 요한 (Johann (1740–1792)과 궁정 요리사의 딸인 마리아 막달라 (Maria Magdalena Keverich in 1767 결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베토붼은 아버지로 그의 재능을 인정받아 과중한 교육을 받았으며 1778년(7살)에 쾰른의 연주회에 출연했고, 11살 때 오페라 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인 네-페 (Ch. G. Neefe) 에 사사(師事)되었다.  

More – Bonn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culture/151

1787년에 뷔인 (Wien)을 여행하여 동경한 모짜르트를 만났으나, 곧 사랑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위독한 소식을 듣고 본으로 돌아왔다.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는 (폐결획으로) 사망했다. 그 후 알코올 의존증으로 실업이 된 아버지를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보느라, 고통스런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이때에 후원자가 있었다. 귀족의 가정 Breuning으로 가정교사의 자리를 얻었다.    

1792년7월, London에서 Wien로 돌아가는 도중에, 본을 들린 하이든 (Joseph Haydn) 에 그의 재능을 인정 받아 제자로 들어가는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이 해 11월에 뷔인으로 이주했다. 그의 음악 출세의 시작으로 베토벤은 처음 피아노 거장으로 자신을 위해 이름을 날렸다. 그의 강한 점은 악기에 대한 자유로운 즉흥성과 환상이었다. Bonn에서 Vienna로 이주한 후, 그의 재능은 곧 합스부르크의 메트로폴의 가장 높은 사회원으로 이끌었다. 1896년에 베토벤은 Prag, Dresden, Leipzig, Berlin을 여행했다. 이 때 프로이쎈의 왕과 왕자 Louis Ferdinand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전히 마비로 악화된 청력(聽力) 상태는 피아니스트로서의 출세을 조기에 종식시켰다. 이 질병은 위기를 촉발시켰고, 베토벤은 1802년 하이리겐슈타트 유서(遺書) [Heiligenstaedter Testament]에서 증언했다.  즉 그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1802년4월부터 10월까지 비엔나 외곽의 작은 오스트리아 마을 하일리겐슈타으 (Heiligenstadt)에서 자신의 상태를 밝히기 위해 살았다. 거기서 그는 청각 장애가 커짐에 따라 자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고 예술을 위해 그리고 예술을 통해 계속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기록한 것을 그의 형제들에게 보내는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썼다.

작곡가로서 시작은 귀의 문제로 고민했음에도, 고전파 양식에 충실히 밝은 활기에 찬 작품을 만들었다. 즉 그의 작풍(作風)은 하이든(J. Haydn, 1732-1809)과 모짜르트 (W. A. Mozart, 1756–1791)의 강한 영향하에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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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년에 교향곡제3번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후 10년간을 거처 중기를 대표하는 작품이 쓰여져서, 베토붼에 있어서 [걸작의 숲] (Romain Rolland에의한 표현)라 불리는 시기가 된다. 그 후 피아니스트겸 작곡가에서 완전히 작곡전업으로 옮긴다.

중기의 교향곡(Symphony)은 [minuetto]는 아니고 [scherzo, 스케르조]의 도입, 종래의 [소나타형식] (Sonata form)을 비약적으로 확대 (제3번, Third Symphony, Sinfonica Eroica), 선율의 기본이 되는 동기와 리듬의 철저조작(徹底操作) (제5, 7번), 표제적 요소 (제6번), 악장(樂章)의 연결 (제5, 6번), 5 악장형식 (6번) 등 혁신적인 기법을 고안해 내었다.  

작품은 고전파의 양식미(美)와 낭만주의(Musik der Romantik)를 아주 높은 차원에서 양립하고 있으며, 음악의 이상적 존재로, 이후의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1811년 자신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Piano Concerto No. 5 (the «Empero”)의 연주에 실패한 후, 그는 학생 칼 체르니 (Carl Czerny)가 조연한 후, 1824년에 교향곡 9번의 초연을 지휘하기까지 그는 다시 청중 앞에서 공연하지 않았다.

1812 여름에 베토벤은 보헤미아의 휴양지 Teplitz(현재 체코의 서쪽에 위치)에서 Goethe 만난다.

이해에 베토벤은 그의 환경에서 여러 여성들과 많은 접촉을 가졌는데 그 중에. 유명한 것은, 그 아이덴티는 오늘날까지 설명되지 않았으나 [불멸의 연인]에게 쓴 1812년의 편지가 있다. 후보자의 한 사람으로 조세핀 브룬스빅 (Josephine Brunsvik)로 그녀의 딸 Minona이 베토벤과의 스캔덜에서 부상한 것일지 모른다.

청력의 저하에 반해서 베토벤은 점점 작곡에 집중한다. 다른 작곡가들은 흔히 자신들의 작품을 빨리 종이에 적는데 반해서 베토벤은 모든 악보를 위해 고로(苦勞)한다. 몇 번이고 뒤에 작곡을 하고 또 개선한다. 그의 광범위한 콘서트 작품은, 특히 그의 아홉 교향곡과 그의 피아노 작품, 특히 5편의 피아노협주곡과 32편의 피아노소나타에 의해서 구별된다. 이외에 바이올린 콘서트,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 미사 졸렘니스 (Missa solemnis), 많은 실내악 작품도 만들었다. 베토벤은 후세를 위해 지속적인 음악작품을 남기라는 그의 주장에 부응해서 살아왔다. 그의 인기는 끊어지지 않고, 오늘날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 중의 한 명이다.

1818년의 두 번째 위기때에는 후기의 서곡집에 대표되는 것처럼 스럼프 (slump)에 빠졌으나, 호모포니 (Homophony)의 전성이었던 당시에 있어서 바흐의 유산 [대위법, Kontrapunkt]   폴리포니 (polyphony)를 연구했다. [대위법對位法]은 중기에 있어서도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대대적으로 취입하는 것에 성공해서 위기를 넘었다. 만년의 현악4중주곡, [피아노 소나타], [미사 솔레니움 = 장엄미사, Missa solemnis], [교향곡 제9번, Ninth Symphony] 등이 후기의 대표작들을 작곡했다.

1824년 그의 교향곡9번의 초연이 끝남에, 그는 청중의 격동의 박수를 보기 위해 주위를 돌려야 했다. 왜야 하면 그는 청중들의 박수도 오케스트라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난청은 그가 음악을 작곡하는 것에 방해되지 않았으나, 콘서트를 연주 하는 것은 (수입원이었으나) 점점 더 어려워졌다.

1826년12월에 폐염에 더해서 황달 등 병상(病狀)이 급격히 악화되어 이후 와병 상태가 되었다. 병상 중에 10번째의 교향곡에 착수하나, 미완성으로 다음해 1827년3월26일에 간경변( 肝硬変)으로 56년의 생애를 끝내다. 그의 장례식에는 2만명의 사람들이 참가 했으며, 슈베르트(다음해에 사망)도 참가했다고 한다.

작품 목록 / https://ko.wikipedia.org/wiki/루트비히_판_베토벤의_작품_목록  (한글)
자료 출서: Wikipedia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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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Bach, J. S. / www.eurasiatour.info/index.php/germany/music/155

Bach, C.P.E. (1714-1788)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84

Handel, G. F. (1685-1759)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culture/135

Haydn, J. (1732-1809)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austria/music/109 

Lehar, F. (1870-1948)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europe/music/169 

Liszt, F.  (1811-1886)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austria/music/219

Mahler, G. (1860-1911)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europe/culture/218

Mendelssohn, F. (1809-1847)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139  

Schumann-W.C. (1819-1896)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240 

Schumann, R. (1810-1856)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240

Wagner, R. (1813-1883)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296

2019 Schumann, Clara / www.schumann-zwickau.de/de/04/clara_schumann.php

Musikermuseen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music/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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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e – www.eurasiatour.info/index.php/en/germany/culture/151-bonn

자료의 출처 일부 – Wikipedia (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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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지열 (Ziyul Song) / zsong@bluewin.ch / www.eurasiatour.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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