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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akau & Poland 도시들

Krakau (크라카우) – 괴테(J. W. von Goethe)의 방문지

1790년 7월26일  – 동년 9월25일 (2개월간)

Carl August 공작의 프로이쎈의 슐레시아 기동연습 참관 차 초청 방문, 괴테의 수행여행으로 첫 방문지는 슬렌지아 주의 주도인 Breslau (브레슬라우, 폴어: Wroclau, www.wroclaw.pl/en) 이었다.  

본 방문지는  Krakau (크라카우, 폴어: Krakau 같음,  http://krakow.travel/en), Tschenstochau (첸스토카우) 그리고 [Wieliezka, 뷜리즈카, 폴어: 같이 표기,  www.wieliczka-saltmine.com] 였다. 또한 괴테는9월4일 대륙에서 첫 증기기관을 보기 위해서Tarnowitz을 방문하였다.

귀가 길에 Beslau에서 9월11일-19일까지 방문 체류하였으며,  9월25일에 Weimar에 귀가했다.

폴란드는 중앙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며, 대평원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국토의 75%가 해발 200M 이하) 동쪽으로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리투아니아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주), 남쪽으로는 체코슬로바키아, 서쪽으로는 독일 등 7개국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발트 해에 접한다. 수도인 바르샤바는 폴란드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민족 구성으로는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폴란드인으로 공용어는 폴란드어다.   이 나라는 서슬라브족 국가들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기도 하다. 슬라브 국가 중에서는 드물게 동방정교회 대신 천주교 신자들이 많은 나라이다. / www.poland.travel/en  

그리고 2019년은 크라카우 시가 [유럽요리수도, European Capital of Gastronomic Culture 2019]이다. / www.culinary.krakow.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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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nd 발틱해(Baltic Sea) 연안의 유명 관광지

 그단스크 (Gdansk, : Danzig, 단치히)

    ©SongZiyul – [발틱 필하모니] 공연 건물 (오른쪽서 2번째)와 선착장 풍경   

1361년에서 1669 년까지에는 [한자동맹]의 일원으로 그의 발전은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1773 년 폴란드 2차 분리된 이후 [그단스크]는 프로이쎈에 속 했으며 1919 년-1939 년간은 [자유도시]이었다.  

1939년9월1일에 독일군의 전함 [Schleswig-Holstein] 호의 Westerplatte 반도에 공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Rokossowski 장군의 지휘하의 붉은 군대의 반격으로 시의 거의 전체와 우측 시 구역이 잿더미로 화했다. 종전 후 [단치히]는 폴란드령으로 귀속되어 종래의 독일인 주민은 모두 추방되였다. 파괴된 시가지, 항만시설, 공장 등은 전후 복구되었다. 최근에는 무역항으로 폴란드뿐만 아니라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수출입항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단스크는 1970년에 즉 노동자 반란이 공산주의 권력자에 의해서 유혈로 제압당했을 때 새로이 역사의 장에 들어왔다. 여기는 1980년8월에 [Solidarnosc], 당시 사회주의 캠프에서 최초의 자유무역연합, 폴란드와 전 유럽을 위해 새로운 더 좋은 미래의 상징 [Stocznia Gdanske (Danziger Werft, 그단스크 조선소)가 여기에서 행해졌다. 즉 레흐 바웬사 (Lech Walesa)는 이 곳에 있는 조선소를 중심으로 자유노조 운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결국 공산정권폴란드 원탁 회의를 통해 자유노조에게 굴복하였고 폴란드는 민주화되었다.  

여기에 [유럽 연합 센터]가 설치되었다.  / www.ecs.gda.pl/About_us

그단스크 시내의 올리바 (Oliwa) 구역에 있는 지토파 수도원 현재 대성당 (www.archikatedraoliwa.pl)를 방문하여 주위의 정원을 돌아보고 나서 유명한 오르간 콘서트를 들었다. 시내의 중심으로 돌아와서 구 시가와 여러 명소들 즉 마리엔 교회와 니콜라이 성당 등을 관람했다. 2시 넘어서 유서 깊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항만 시설을 돌아 본 후 근교에 유명한 휴양지로 이동했다.

그단스크는 발트 해에 면한 포모르스키에 (Pomorskie) 주의 항구 도시이다. 그디니아 (Gdynia), 소포트 (Sopot)와 합체(合體)하여 활기를 띠고 있다.  독일어 이름인 단치히 (Danzig)로도 잘 알려져 있다. / www.gdansk4u.pl/en/

그단스크의 역사를 보면 취락은 기원전 2500 년에 이미 여기에 존재했으며 첫 번째 항구는 10 세기 후반에 건립 되었다. 현지인들은 997년에 선교를 위해 방문한 보혜미아 출신의 성자 아달베르트 (St. Adalbert)에 의해서 세례를 받았다. 후에 아달베르트는 이방인으로 공격을 받고 순교했다. 

12세기에 이 큰 취락 군에는 독일과 화란에서 온 많은 상인들이 정착하였으며, 단치히 시민들은 독일 기사단의 후견인으로  제거되었다. 1454년에 폴란드의 도시가 되었다. 바이셀 강 하구의 편리한 지리적 위치와 많은 장점으로 단치히 시는 역동적인 발전을 가져 왔다. 곡물의 교역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또한 문화와 과학의 중심지로서 명성을 얻었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들 즉 수학자 크뤼거 (P. Krüqer), 천문학자 헤베리우스 (Johann Hevelius), 철학자 케커만 (B. Keckermann), 역사가 파스토이우스 (J. Pastorius), 제도가 (製圖家) D. Chodowiecki 그리고 철학자 쇼펜하우어 (A. Schopenhauer) 등이 이 곳으로 왔다. 또한 독일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귄터 그라쓰 (Günter Grass, 1927)는 이곳에 태어났으며 그의 대표작 [양철 북]의 배경이 된 도시이고 그 외의 여러 작품도 이곳에 연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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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체친 (Szczecin, 독: Stettin 슈테틴)

     ©SongZiyul – 오더 강 언덕에 우뚝 솟아 있는 의회 건물의 풍경 

슈체친은 폴란드 북서부 슈체친 라군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항구 도시며 [자흐도니오 포모그스키에] 주의 수도이다. 1945년까지는 독일령으로 슈테틴 (Stettin)으로 불렸다. 오더 (Oder) 강 양편으로 발달이 되었으며 인구는 약 45만명 이다. 폴란드에선 그단스크에 뒤를 이어 제2의 항만도시로 기계 공업 등이 발달해 있다.  

1237년과 1243년 사이 도시는 새로 지워졌고 [한자 동맹] (Hanseatic League)에 가입 됐다. 

역사적으로 오래 동안 프로이쎈의 영향력에 있었다. 러시아의 카타리나 여(女) 대제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폴란드 최 북서단, 독일과 국경에 접해 있으며 오더 강 양안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발틱 해에 접해 있으며 시의 북쪽에는 슈체친 만이 위치해 있으며 오데르 강은 이곳을 통해 발트 해로 유입한다.

폴란드의 보레스와프 3세에 의해서 지배되여 기독교에 개종할 경에 전 슈체친을 만 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으며 상업의 중심지로 번영했다. 1243년에 자치권을 받았으며 1630년 경까지 포메라니아 공이 지배하는 지역의 수도였다. 이 공가(公家)가 단절한 후 1720년까지 스웨덴의 지배하에 있었고 그 후에 프로이쎈 왕국에 들어갔다. 1871년에 독일제국령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폴란드 령이 되고 독일계의 주민이 대량 추방되었다. 주요한 산업 거점으로 공업화가 진행되었다. 슈체친 시가는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군과 소련군의 전투로 65%가 파괴되었다. 특히 역사지구를 포함한 시가 중심부와 항만은 100% 파괴되었는데 전후 남은 자료를 갖고 폴란드 시민의 손에 의해서 정확히 복원되었다.   

또한 1946년3월의 위스톤 처칠 (Winston Churchil, ) 영국 수상에 의한 [철의 장막] 연설로 미소 냉전을 상징하는 도시로 유명해졌다. 1970년과 1980년에는 대규모의 반사회주의 폭동이 일어났으며, 후에 생긴 [연대]의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99년부터 [서 포메라니아] 주의 주도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폴란드 북서단,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오더 강 양안에 시가가 펄처 있으며 서로서로 좌안지구, 우안지구로 번영하고 있다. 시의 북에는 슈체친 만이 있으며 오더 강은 여기를 경유해서 발틱 해에 주입된다. 오더 강 좌안(左岸)에는 오페라하우스, 국립극장, 박물관, 상선대학 등이 서있다.  / www.szczecin.eu/en/odwiedz_szczecin  

슈체친 [폴란드 서부 포메라니아] (Western Pomerania)의 해정 및 산업의 센터이며 [슈체친 대학교  (University of Szczecin), 슈체친 공과대학교 (Szczecin University of Technology) 등이 있는 과학 및 교육의 도시이다.  

[폴란드 국립철도 (PKP)]는 폴란드 주요 도시들과 왕복 연결이 되고 있으며, 매일 수도 와르샤우와 여러 편이 운행되고 있으며 또한 [Intercity] 급행열차들은 정각에 운행이 되고 있다. 그리고 [Swinoujscie]행도 여러 편이 있으며 소요시간은 2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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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워브제그 (Kolobrzeg, 독: Kolberg 콜베르크) 

    ©SongZiyul – [코워브제그]의 깨끗한 백사장과 잘 설치된 해변 산책로 풍경  

일행은 4성급 호텔 [Sand hotel]에 투숙하였으며 만찬은 자매 호텔 [Marine Hotel, www.marinehotel.pl]의 전망이 좋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시장과 호텔체인 측의 인사들의 환영을 받으며 또한 일급 요리사의 요리로 즐겼다.  

Marine Hotel & Ultra Marine / www.youtube.com/watch?v=5vPCmAma51I   

코워브제크는 폴란드 (Poland)의 북서부 서 포모제 (West Pomeranian Voivodeship)주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17.15km2, 인구는 약50,000명이다. 발트 해 남부 연안에 있는 파르셍타 (Parsęta) 강과 접하며 1950년부터 1998년까지는 코샬린 (Koszalin) 주에 속해 있었다.

10세기에 건설 되었고 1255년 뤼베크 법 (Lübeck law)에 따라 도시로 승인 되었다. 1361년 [한자 동맹](Hanseatic League)에 가입 했으며 1701년 프로이센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1761년 7년 전쟁 당시에 러시아 제국에 점령되기도 했지만 전쟁 이후에는 프로이센에 반환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격으로 인해 도시의 80%가 파괴되기도 했으며 1945년 폴란드에 귀속된 뒤부터 독일계 주민들이 추방되었다. / www.kolobrzeg.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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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째날 오전은 코웨브제크 시내 관광을 하였다. 처음 호텔에서 시내 관광용 소형 전자 차로 주택 및 호텔지역을 돌아 보았다. 그리고 걸어서 해변 가와 탑이 있는 역사적인 지점과 시내 중심지의 교회 등을 돌아보았다. 시간 상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그단스크로 향했다. 중간에 레바 (Leba)를 잠간 들여 자연공원 사산(砂山)을 올라 가보았다. / www.poland.travel/en

그단스크에 좀 늦게 도착하여 최근에 개관한 편리한 4성급 호텔 (Hotel Golden Tulip / www.goldentulipgdanskresidence.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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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포트 (Sopot, 독: Zoppot)

 ©Z. Song – [소포트]시 해변의 아름다운 보트 정박소와 잔교(棧橋)의 풍경  

폴란드의 최대 항구도시 [그단스크]의 북쪽 근교에 있는 도시로 인구 약 4만명, 면적은 17km2의 아름다운 휴양도시이다. 또한 발틱 해에 면하는 관광도시로 국내외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대도시인 그단스크와 그딘겐 (Gdingen) 사이에 위치하며 양 도시까지는 각각 약 10km 정도이다. 3개의 도시를 합해서 [Tricity]라고 부른다. / www.sts.sopot.pl   

전에 폴란드 령이었는데 제1차 폴란드 분할에 의해서 프로이쎈 령이 되었다. 19세기부터 관광지로 발전했고 20세기 초두에는 독일 황제 빌헤름 2세도 방문했다.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서 [단치히 자유도시]에 속하게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스에 병합된 후, 소련 붉은 군대의 공격을 받아서 도시가 거의 황폐해졌다.   

전후에도 관광지로서 다시 발전하여 발틱 해의 리조트 지로서 매년 여름 많은 바캉스 객 즉 폴란드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와서 체류하고 있다. 주변에도 많은 관광지로 둘려 싸여 있어서 폴란드 관광의 기점으로 사용된다.

여름이 끝날 무렵 유럽 최대 규모의 [소포트 국제음악제] [Sopot Intervision Song Contest]가 개최된다. / http://en.wikipedia.org/wiki/Intervision_Song_Contest

이 도시를 방문한 후에 해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함으로 전 일정을 마치고 항공편으로 귀가하게 되었다.  /  폴란드항공사 Eurolot   / http://eurolot.co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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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동맹 (독어: die Hanse, 폴: Hanza, 영: Hanseatic League)

중세 후기에 북 독일을 중심으로 발틱 해 연안지역의 무역을 독점해서 유럽 북부의 경제권을 지배한 도시 동맹이다. 주로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 방호와 상권 확장 등을 목적 으로 했다.

전성기의 [한자동맹]은 약 200개 도시로 구성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입의 구체적인 조약•협정이 체결된 것이 아니어서 [한자동맹도시]라고 언급하는 것을 망서리는 도시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도시 이외에 [독일기사단]도 한자동맹에 가입하고 있었다.

한자동맹 도시 중에도 도시에 따라 한자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뤼벡크 (Luebeck), 함부르크  (Hamburg) 등의 도시는 동맹의 유지에 열심이었으나 당시 독일 최대의 도시었던 쾰른 (Köln)은 동맹 내에서 독자 행동을 취했다.

뤼벡크, 함부르크, 뷔스마르 (Wismar), 로스토크 (Rostock) 등은 한자동맹 최초기의 멤버였고 긴 기간 한자를 지속했다. 최후까지 [한자동맹]을 계속한 것은 뤼베크, 함부르크와 브레멘 (Bremen)이다. / http://en.wikipedia.org/wiki/Hansea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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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지열 (Song, Ziyul) / zsong@bluewin.ch / www.eurasiatour.in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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